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미군 여중생 압사 사고 (문단 편집) == 발단 == [[2002년]] [[6월 13일]], 즉 [[2002 월드컵]]에 국민들이 환호하던 시절이었으며 조별리그 3차전인 포르투갈과의 경기 하루 전에[* 참고로 이날은 [[제3회 전국동시지방선거]]가 있는 날이기도 하였다.] [[경기도]] [[양주시|양주군]](現 양주시)[* 양주군이 양주시로 승격된 건 2003년의 일이다.] [[광적면]] 효촌리 [[56번 지방도]] 갓길에서 당시 조양중학교 2학년이었던 신효순, 심미선 양(1988년생, 둘다 사망 당시 14세)이 국도를 따라 언덕을 넘어 덕도리 쪽으로 300m만 가면 있는 효순양과 미선양의 친구가 살던 초가집이라는 이름의 식당에 모여 의정부에 놀러가기로 하였다. 이들은 졸업생이 10명(그 중 여학생은 여섯 명)에 불과한 효촌초등학교를 나온 동창으로, 다음 날은 효순 양의 생일이기도 해서 여학생 다섯 명이 모이기로 약속했다.[*A [[https://www.donga.com/news/article/all/20020718/7843682/1|[송평인 기자의 현장칼럼] 생일파티길 두 여중생 궤도 차량에 참변 전말]](2002년 7월 18일 동아일보, 2009년 9월 17일 수정.) 기사에 나온 내용을 인용하자면 "기다리던 효순이와 미선이는 오지 않았고 그날의 생일 파티는 엉망이 됐다. 초등학교 6년을 같이 다녔고 중학교도 같이 다니고 있어 자매 이상으로 친했던 남은 친구들은 아직 죽음의 의미가 무엇인지도 모른 채 효순양을 위해 준비했던 선물을 태우는 것으로 그들만의 장례식을 치렀다."고 한다.] 이날 오전 10시 30분 경 두 여학생은 마을을 나와 친구 집으로 길을 따라 올라가고 있었다. 그 뒤에서는 주한미군 미 보병 2사단 44공병대대 소속 부교 운반용 장갑차가 법원리 쪽에서 내려와 약간 왼쪽으로 틀어 막 언덕으로 올라오고 있었다. 차량 행렬은 선두 안내 차량 1대, 병력 수송 장갑차, 그 뒤로 사고 차량, 일반 공병 궤도 차량 3대, 후미 안내 차량 1대였고 맞은편에서 M2/M3 브래들리 기갑 전투 차량 5대가 덕도리에서 무건리 훈련장으로 오고 있었다. 사고가 난 도로의 폭은 3.3m 정도인 데 반해 사고 차량의 폭은 3.65m였다. 애초에 사고 차량이 갓길을 걷고 있던 학생을 치지 않을 수가 없었다.[*A] 두 여학생은 주한 미 육군 제2보병사단의 [[https://bemil.chosun.com/nbrd/bbs/view.html?b_bbs_id=10044&pn=0&num=51540|M60 AVLM]]에 깔려 현장에서 숨졌다. [[http://kko.to/V4_DogqAg|사고 발생 위치]] 이 차량은 [[M60 패튼]] 전차의 차대에 [[미클릭]]을 탑재한 지뢰 제거용 장갑 차량이다. 다시 말해 전차를 개조해 만든 장갑차라는 것이다. [[장갑차]] 항목을 보면 알겠지만 일반적으로 말하는 장갑차와 이 차량은 조금 다르다. 가해자인 두 미군을 처벌하라는 서명을 받던 장소의 지하철 역이나 좀 큰 거리 같은 곳이라면 사고 현장의 사진들이 흔히 걸려 있었는데 아무 여과 없이 그대로 사용해서 이후 참혹함 등의 이유로 항의가 들어와 모자이크 처리를 했지만 이미 본 사람들이 많았다.[* 본 위키에서는 권유, 강제성 서술을 제한하지만 혹시라도 보고 싶은 사람들에게 경고하자면 '''안 보는 것이 좋다.''' 여학생들의 장기가 그대로 나와 있으며, 찢어진 다리 등 참혹하고 잔인한 사진들이 나온다. '''심지어 머리에서 나온 피와 뇌까지 나오는 사진도 있으므로 비위가 약하거나 잔인한 것을 싫어하는 사람들은''' '''절대로 보지 말자.''']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